유년 시절,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아 내가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고, 슬픔이나 힘든 감정을 누구와도 나눠본 적이 없었어.
친척집을 전전하며, 다른 이들이 명절 때 친척집을 가면 불편하다는 것을 생각해봤지만,
그런 환경에서 대학에 가기 전까지 살아 봤다고 상상해봐.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
잠자고 씻고 밥 먹고 나오는 곳이지만, 배가 고파도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열기 눈치보여, 라면 끓여 먹는 것도 남의 집처럼 느껴져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상담할 곳도 없었지.
그렇게 슬픔, 힘듦, 우울함과 같은 감정을 배제하려고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 같아.
슬프거나 힘들어도 참고 잊어버려야 하고, 우울해도 참고 잊어버려야 했어.
그래서 그런 것들이 습관이 된 거 같아.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자기 방어 기제라고 해.
사람이 한 달만 지속적으로 뭔가를 하면 습관이 된다던데, 나는 그런 걸 20년 가까이 했으니 몸에 베여 있겠지.
그런데 슬프고 힘들고 우울한 부분만 닫혔다면 좋았을텐데, 좋고 기쁘고 즐거운 부분, 즉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부분도 덩달아 닫혔더라고.
그래서 내 주위엔 항상 벽이 둘러쳐져 있는 느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았어.
또 농담삼아 사이코패스라는 소리도 들어 봤다니까.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이 없었어.
당연히 돈을 벌어야 살아가니까, 그 생각 하나만 있었지.
하지만 엄청 좋아해주는, 나 없으면 죽겠다는, 나 하나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사람을 만나서 감정세포가 다시 살아났어.
이 사람은 엄청나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는데, 완전 나와 반대였거든.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며 맛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 여기 저기 예쁘다며 색조합이라든가, 바다, 해, 바람 등 모든 것에 감정을 표현하더라고.
그래서 이런 나의 정신 상태도 모르고 살다가, 이 사람을 만나고 비로소 내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그러니, 사이코패스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잘 살펴줘.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 이후로, 내 과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더 잘해줘.
그러니까 마음이 열릴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