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같이 귀납, 연역은 개밥그릇에 던져버리는 애매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는 자칭 학문은 태생적으로 진리라는 것을 향해 갈 수도 없을 뿐더러 그 근처도 기웃거리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음. 다시 말해 자신의 상황을 사주라는 렌즈를 통해 얼마든지 재해석, 왜곡하고 합리화 할 만한 여지가 아주 가득하다는 말. 여기서 생기는 문제들.
A. 기신대운일 때 사주에 입문한 경우
A-1. 기신대운임에도 일이 잘 풀리는 경우 앞으로 더 잘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가거나 사주 자체를 믿지 않음. 가장 좋은 경우지만 간간히 잘 나가는 인생에 괜한 흠집을 잡고선 사주에 매몰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음.
A-2. 기신대운에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주를 알게 된 후 자신의 인생 중 길게는 10년, 평균적으로 5년에 해당하는 대운을 ‘통째로 못 쓰는 시기’로 여겨버리는 무의식을 심어버림. 세운과 월운까지 따져보며 기회를 엿본다는 동기부여를 얻는 경우보다 어차피 버린 카드이니 다음 대운을 기다리는 인생의 방관자로 전락하게끔 만드는 간사한 심리를 자극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
A-2-1. 평생이 기신대운인 경우 그냥 좌절해버리거나 사주 자체를 믿지 않아버림. 후자라면 오히려 나은 경우.
A-2-2. 이번 기신대운 이후로 용신대운이 오는 경우 앞서 말했듯 향후 약 5년 내외를 앞으로의 대운을 위한 담보 삼듯 현 생활의 사이클을 유지하는 선택을 함. 갱생의 기회를 일부러 늦추는 것만큼 자기 인생에 폐를 끼치는 건 아주 드물다. 기신대운이 좀 더 길게 이어지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커다란 손해를 스스로 창출하는 셈.
A-2-3. 기신대운이 지나고 용신대운에 진입했는데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는 경우 이 정도가 됐으면 사주의 실체에 대해서 의심해볼 만도 한데 자기가 참아왔던 5년 내외, 그 이상의 매몰비용이 아쉬워서 그 끈을 놓지 못함. 급기야 현실의 본인에게 삿대질을 돌리기보다 모든 것을 사주 내에서 해결하려는 습성에 빠지게 됨. 사주라는 것은 워낙 애매해서, 제대로 배우기가 어렵다 보니 (모든 인생에 대입할 만한 제대로 된 것이 있는지도 의문) 결국 이런 저런 이론이나 겉핥기로 살피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용신대운임에도 일이 안 풀리는지’, ‘이게 알고보니 용신대운이 아니었다든지’와 같은 자신의 씹창난 인생의 배경을 사주에서 집중적으로 찾기 시작함. 결국 이러한 확증편향이 성공하는 경우 그 굴레에 갇혀서 자신만의 용신대운을 또다시 오매불망 기다리게 됨.
A-2-4. 기신대운이 지나고 진입한 용신대운에 일이 잘 풀리는 경우 일단 기분은 좋음. 지금까지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쁨에 자기 사주명식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쉼. 하지만 그 좋은 대운이라는 것은 길어야 30-40년, 짧으면 10년도 채 안 됨. 당장의 행복을 만끽하면서도 마음 속에서 슬슬 기어나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언제나 달고 살아야 함. 세월이 흘러 사주 상 좋은 시절이 다 지나게 된 후 다시 기신대운을 맞이하는 순간 현실을 대하는 자신의 징크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
B. 용신대운에 사주에 입문한 경우
B-1. 용신대운이고 일이 잘 풀리는 경우 사주로 합리화를 해야 할만한 부분이 거의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 사주를 알게 된 후에도 이를 통한 깨달음이나 의미 찾기보다는 그냥 좋은 것은 좋다고 즐기며 나쁜 것은 나쁘다고 슬퍼하는 정도의 행복한 사람들.
B-2. 용신대운이지만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 기신대운에서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과 동일한 심리를 보임. 기심대운에 비해 사주의 영향력이 약해져,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사주와 관련된 여러 해석 중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선택의 폭이 커지기도 함.
B-2-1. 이번 용신대운 이후로 기신대운이 오는 경우 용신대운에서도 일이 잘 안 풀리다가 더 나빠지는 시기를 앞두고 있어 긴장감이 대단히 높음. 급기야 대운을 빨리 바꾸고 싶어서 사주와의 연결을 끊고 싶을 정도로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음.
B-2-2. 용신대운이 지나고 기신대운에 진입했는데도 일이 잘 풀리는 경우 용신대운에서의 실패로 인해 기신대운에서의 성공에 대한 기대가 컸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들은 사주의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현실적인 판단을 통해 성공한 경우가 많음.
B-2-3. 용신대운이 지나고 진입한 기신대운에 일이 안 풀리는 경우 사주에 대한 믿음을 잃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느낌. 그러나 사주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