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3월의 일임. 입대를 2달 정도 남겨두고 있던 나는훈련소 입소 전에 기초 체력 좀 늘리고자 동네 뒷산에서 매일 아침 6~7시 사이에 빠른 걸음 + 달리기로 운동을 하고 있었음.
동네 뒷산은 60년대에 조성된 공원묘지와 산책로가 겹치는 산이었는데수 십년째 사람들이 산책로로 애용하는 곳이라서 나도 개의치 않고 그냥 다녔음.
물론 2~3월 앙상한 나뭇가지를 감싸는 이른 아침의 안개 때문에 엄청 스산하기도 했고, 또 그렇게 이른 아침엔 노인 몇 명만 산책하느라 인적도 드물어서 두려움에 일부러 더 빨리 뛰어서 묘지 구간을 통과하고는 했음.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마찬가지로 묘지 구간을 돌파하고 다시 공원 묘지 바깥인 산책로 구간으로 진입하는 오르막길을 숨 헐떡이면서 달리고 있는데 옆에 인기척이 있어서 거길 보니까 바가지 머리에 어두운 노란색 스웨터와 갈색 긴 치마를 입은 애가 어떤 무덤 앞에 쭈그려 앉아서 접시에 놓여진 포도를 손으로 집어서 먹고 있는 거임.
그래서 그때 난 속으로 ‘와 시발 나도 상상만하고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짓을 하고 앉았네… 역시 애들이라 다르네’하고 그냥 지나침.거기 보면 성묘객들이 무덤에 과일, 과자, 술 이런거 올려두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아침에 배고프고 목 마를때 그거 좀 슬쩍 먹어볼까 했었지만, 괜히 재수 옴 붙을까봐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는데 그 꼬마 여자애는 그걸 하고 있던 거임.
그래서 속으로 감탄하면서 그냥 내 갈길 갔음.그 날은 친구가 입대 얼마 안 남았으니 술 사준다고 나오라고 해서 저녁 겸 술자리 가졌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음.”근데 아까 그 꼬마애는 그 시간에 거기서 혼자 뭐하고 있던거지?”어른들도 없이 성묘를 왔을리는 없는데?”그 시간에 꼬마애가 혼자서 거기까지 올라와서 과일을 먹는다고?”근데 내가 오늘 그 산에 가긴 했었나? 산 안가고 꿈 꾼거 아닌가?”이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내가 오늘 그 산에 갔었는지 조차도 명확하지가 않았음.
이후로는 친구들 만나서 술 처먹고 하느라 운동은 다 스킵했고 결국 군대가고 복학하고 졸업하고… 정신 없이 보내느라 어느 덧 2020년이 됨.
최근에 집에서 빈둥거린다고 차라리 운동이라도 하라길래다시 그 산에 가서 등산을 하는데, 문득 저 때의 일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그 자리에 가보니까그 꼬마가 포도 집어 먹던 무덤 묘비엔 조OO 어린이 잠드다.一九五七年 六月 十三日 生一九六六年 十月 九日 卒
이렇게 적혀 있더라…갑자기 소름 확 돋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