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rum gestarum divi Augusti, quibus orbem terrarum1 imperio populi Romani subiecit, et impensarum quas in rem publicam populusque Romanum fecit, incisarum in duabus aheneis pilis, quae sunt Romae positae, exemplar subiectum.
전세계를 로마 인민의 지배에 복종시켰던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들에 대해, 또한 국가와 로마 인민을 위해 지출을 행했던 일들에 대해, 또한 로마에 세운 2개의 구리 기둥에 이를 새긴 것에 대해, 그 복사본을 남겨둔다.
[1] (a) Annos undeviginti natus exercitum privato consilio et privata impensa comparavi, per quem rem publicam a dominatione factionis oppressam in libertatem vindicavi. (b) [Ob quae] senatus decretis honorificis in ordinem suum me adlegit, C. Pansa et A. Hirtio consulibus, consularem locum sententiae dicendae2 tribuens, et imperium mihi dedit. (c) Res Publica ne quid detrimenti caperet, me propraetore simul cum consulibus providere iussit. (d) Populus autem eodem anno me consulem, cum cos. uterque bello cecidisset, et triumvirum rei publicae constituendae creavit. [1] (a) 나는 19살 때, 사적인 계획과 사적인 지출로 군대를 준비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붕당의 지배에 짓눌렸던 국가에 자유를 보장하였다.(b) 그 때문에 원로원은 영예로운 일들을 결의하였는데, 즉 가이우스 판사와 아울루스 히르티우스가 집정관들이었을 때(= BC 43), 나를 그들의 다음 서열로 (원로원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집정관급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또한 내게 절대 명령권을 준 것이다.
(c) 국가는 전투에서 패하지 않도록, 나에게 법무관 대행의 권한을 주고 집정관들과 함께 미리 조치하도록 명령하였다.
(d) 그런데 로마 인민들은, 두 집정관이 전쟁에서 쓰러지자, 나를 같은 년도의 집정관으로, 그리고 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한 삼두로서 선출하였다.
[2] (a) Qui parentem meum trucidaverunt, eos in exilium expuli iudiciis legitimis ultus eorum facinus, et postea bellum inferentis rei publicae vici bis acie. [2] (a) 나의 아버지3를 찔러 죽인 자들을 법적인 재판들을 통해 추방당한 신세가 되도록 내가 몰아냄으로서 그들을 단죄하였다. 또한 나중에 그들이 국가한테 전쟁을 일으키자 두 번 전열에서 싸워 이겼다. [3] (a) Bella terra et mari civilia externaque toto in orbe terrarum saepe gessi, victorque omnibus veniam petentibus civibus peperci. (b) Externas gentes, quibus tuto ignosci potuit, conservare quam excidere malui. (c) Millia civium Romanorum sub sacramento meo fuerunt circiter quingenta. (d) Ex quibus deduxi in colonias aut remisi in municipia sua stipendis emeritis millia aliquanto plura quam trecenta, et iis omnibus agros adsignavi aut pecuniam pro praemiis militiae dedi. (e) Naves cepi sescentas praeter eas, si quae minores quam triremes fuerunt. [3] (a) 전 세계에 걸쳐 뭍과 바다에서, 내전과 대외전에서 나는 종종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승리자가 되어 용서를 갈구하는 모든 시민들을 사면하였다.(b) 완전히 용서를 구하는 외부의 종족들을 나는 파괴하기보다는 보존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c) 대략 50만명에 달하는 로마 시민권자들이 내게 입대 서약을 행하였다.
(d) 나는 그들 가운데 일부는 식민도시들로 보내거나, 또는 그들의 자치도시들4로 급료를 지불하고 돌려보냈는데 그 숫자가 30만명을 넘었으며, 군무에 종사한 데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 모두에게 땅을 분배하거나 돈을 주었다.
(e) 나는 600척의 함선들과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삼단노선들을 획득하였다.
[4] (a) Bis ovans triumphavi, tris egi curulis triumphos et appellatus sum viciens et semel imperator. (b) Cum autem pluris triumphos mihi senatus decrevisset, iis supersedi. (c) Laurum de fascibus deposui in Capitolio, votis quae quoque bello nuncupaveram solutis. (d) Ob res a me aut per legatos meos auspicis meis terra marique prospere gestas quinquagiens et quinquiens decrevit senatus supplicandum esse dis immortalibus. (e) Dies autem, per quos ex senatus consulto supplicatum est, fuere DCCCLXXXX. (f) In triumphis meis ducti sunt ante currum meum reges aut regum liberi novem. (h) Consul fueram terdeciens, cum scribebam haec, et agebam septimum et tricensimum tribuniciae potestatis.(b) 그런데 더 많은 개선식들을 원로원이 의결했었으나, 난 사양하였다.
(c) 내가 이전에 (신들께 성공을) 빌었던 전쟁들에 대한 서약이 해결될 때마다, 나는 파스키스들부터 월계관을 카피톨리움에 걸어놓았다5.
(d) 나의 새점들로 인하여 나와 또는 나의 부장들에 의해 땅과 바다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던 일들 때문에 원로원은 불사신들께 55번의 희생제의를 결정하였다.
(e) 그런데 원로원의 결의에 의해서 희생제의를 하기로 결행된 날은 890일에 달하였다.
(f) 나의 여러 개선식에서 내 전차 뒤로 왕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끌려나온 숫자는 총 9인에 달하였다.
(h) 나는 집정관을 13회 역임하였으며, 이 기록을 호민관 권한을 받은지 37년 째(= AD 14)에 새겨오고 있다.
[5] (a) Dictaturam et apsenti et praesenti mihi delatam et a populo et a senatu, M. Marcello et L. Arruntio consulibus non accepi. (b) Non recusavi in summa frumenti penuria curationem annonae, quam ita administravi, ut intra paucos dies metu et periculo praesenti populum universum liberarem impensa et cura mea. (c) Consulatum quoque tum annuum et perpetuum mihi delatum non recepi. [5] (a) 마르쿠스 마르켈루스와 루키우스 아룬티우스가 집정관이었을 때(= BC 22) 내가 (도성에) 없었을 때와 있었을 때 각각 한 번씩, 원로원 및 로마 인민들에 의해서 독재관 권력이 제안되었으나, 난 받아들이지 않았다.(b) 그러나 극도로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곡물 관리관직을 거절하지 않았으며, 다음과 같이 일을 처리하였다. 즉, 나의 지출과 관리로 며칠만에 위험과 두려움에 당면한 로마 인민들을 구하였다.
(c) 나는 그 해의 집정관직, 또한 종신 집정관직을 제안받았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6] (a) Consulibus M. Vinicio et Q. Lucretio et postea P. Lentulo et Cn. Lentulo et tertium Paulo Fabio Maximo et Q. Tuberone senatu populoque Romano consentientibus ut curator legum et morum summa potestate solus crearer, nullum magistratum contra morem maiorum delatum recepi. (b) Quae tum per me geri senatus voluit, per tribuniciam potestate perfeci, cuius potestatis conlegam et ipse ultro quinquiens a senatu depoposci et accepi. [6] (a) 마르쿠스 비니키우스와 퀸투스 루크레티우가 집정관이었을 때(= BC 19), 그 다음에 푸블리우스 렌툴루스와 그나이우스 렌툴루스가 집정관이었을 때(= BC 18), 세번째로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퀸투스 투베로가 집정관이었을 때(= BC 11), 원로원과 로마 인민이 한 뜻으로 나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법과 풍속에 대한 관리관으로 선출하였으나, 조상들의 관습에 어긋나는 그러한 관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b) 그 다음으로 원로원은 나를 통해 이뤄지기를 바랬던 일들을 나는 호민관 권한을 통해 이뤘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원로원으로부터 그 권력을 5번 행사하면서 동료를 세워줄 것을 요청하고 받아들였다
[7] (a) Triumvirum rei publicae constituendae fui per continuos annos decem. (b) Princeps senatus fui usque ad eum diem quo scripseram haec per annos quadraginta. (c) Pontifex maximus, augur, XV virum sacris faciundis, VII virum epulorum, frater arvalis, sodalis Titus, fetialis fui. [7] (a) 국가를 바로세우기 위하여 나는 연속적으로 10년 동안 삼두의 권한을 행사하였다.(b) 또한 나는 여기에 글자를 새겨넣는 날까지 쭉 40년 동안 원로원의 수장9이었다.
(c) 또한 나는 최고 제사장이었으며, 복점관이기도 하였고, 성사를 행하는 15인의 사제들 중 1인이며, 성찬식을 행하는 7인의 사제들 중 1인이었고, 라레스 신을 섬기는 동지회와 티투스 동지회의 사제들 중 1인이었다.
[8] (a) Patriciorum numerum auxi consul quintum iussu populi et senatus. (b) Senatum ter legi, et in consulatu sexto censum populi conlega M. Agrippa egi. (c) Lustrum post annum alterum et quadragensimum feci, quo lustro civium Romanorum censa sunt capita quadragiens centum millia et sexaginta tria millia. (d) Tum iterum consulari cum imperio lustrum solus feci C. Censonno et C. Asinio cos., quo lustro censa sunt civium Romanorum capita quadragiens centum millia et ducenta triginta tria millia. (e) Et tertium consulari cum imperio lustrum conlega Tib. Caesare filio meo feci Sex. Pompeio et Sex Appuleio cos., quo lustro censa sunt civium Romanorum capitum quadragiens centum millia et nongenta triginta et septem millia. (f) Legibus novis me auctore latis multa exempla maiorum exolescentia iam ex nostro saeculo reduxi et ipse multarum rerum exempla imitanda posteris tradidi. [8] (a) 귀족들의 수효를 나는 다섯번째 집정관을 역임했을 때(= BC 29) 인민과 원로원의 명령에 의해 늘렸다.(b) 또한 나의 여섯번째 집정관 역임 시(= BC 28) 동료 집정관인 마르쿠스 아그립파와 함께 세 차례 원로원을 등록하였다10.
(c) 나는 42년 동안 호구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처음) 조사하였을 때는 로마 시민들의 머릿수가 4063000명으로 헤아려졌다.
(d) 가이우스 켄소리누스와 가이우스 아시니우스가 집정관이었을 때(= BC 8) 두 번째로 나는 집정관급의 절대 명령권을 통해 호구조사를 실시하여 로마 시민들의 숫자를 4233000명으로 헤아렸다.
(e)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섹스투스 압풀레이우스가 집정관이었을 때(= AD 14) 나는 내 아들인 티베리우스 카이사르11를 동료로 삼아 집정관급의 절대 명령권을 통해 호구조사를 실시하여 로마 시민들의 숫자를 4937000명으로 헤아렸다.
(f) 나의 발의에 의해 새로운 법들이 통과되어 이미 우리 시대에 희미해졌던 조상들의 여러 훌륭한 관습들을 다시 도입하였으며, 나 자신 역시 미래 세대에 모방되어야 할 여러 훌륭한 예시들을 전해주었다.
[9] (a) Vota pro valetudine mea suscipi per consules et sacerdotes quinto quoque anno senatus decrevit. (b) Ex iis votis saepe fecerunt vivo me ludos aliquotiens sacerdotum quattuor amplissima collegia, aliquotiens consules. (c) Privatim etiam et municipatim universi cives unanimiter continenter apud omnia pulvinaria pro valetudine mea supplicaverunt. [9] (a) 나의 건강을 위하여 집정관들과 사제들이 5년 마다 한 번씩 축원할 것을 원로원이 결의하였다.(b) 그 축원들 가운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종종 몇 차례의 경기들이 4인의 최고 사제회에서, 몇 차례는 집정관들이 개최되었다.
(c) 사적으로 또한 도시 단위로 모든 시민들이 한 마음으로 모든 신전의 제단 옆에서 나의 건강을 위해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10] (a) Nomen meum senatus consulto inclusum est in saliare carmen, et sacrosanctus in perpetum ut essem et, quoad viverem, tribunicia potestas mihi esset, per legem sanctum est. (b) Pontifex maximus ne fierem in vivi conlegae mei locum, populo id sacerdotium deferente mihi quod pater meus habuerat, recusavi. (c) Quod sacerdotium aliquod post annos, eo mortuo qui civilis motus occasione occupaverat, cuncta ex Italia ad comitia mea confluente multitudine, quanta Romae nunquam fertur ante id tempus fuisse, recepi, P. Sulpicio C. Valgio consulibus. [10] (a) 나의 이름은 원로원의 결정으로 마르스의 찬가에 포함되었으며, 내가 존재하는한 영원히 신성불가침하며 내가 살아있는 한 호민관 권한은 내게 속한다는 사실이 법으로서 축성받았다.(b) 나는 내 동료12가 그 자리에서 살아있는 동안 최고 제사자잉 되고 싶지 않았으며, 인민들에 의해 내 아버지가 역임하였던 그 성직을 맡으라고 제안하였을 때, 나는 거절하였다.
(c) 몇 해 뒤, 내전이 벌어졌을 때 이 직책을 차지했었던 이의 죽음으로, 이탈리아 내의 모든 이들이 나의 집회장으로 모여들었으니13, 이러한 엄청난 일은 로마에서 그 이전에는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최고 제사장의 직책을 받아들이니, 때는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와 가이우스 발기우스가 집정관이었던 때였다. (= BC 12)
1. orbis terrarum은 ‘전세계’를 뜻하는 관용어이다.
2. (ius) sententiae dicendae는 관용구로서 여성 단수 속격으로만 쓰이며, ‘(원로원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3. 여기서 ‘나의 아버지’는 아우구스투스의 친부인 가이우스 옥타비우스가 아니라, 양부인 독재관 카이사르를 뜻한다.
4. 여기서 in sua municipia(그들의 자치도시들로)는 ‘그들의 고향으로’라고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5. 그러니까 파스키스들에 씌워진 월계관을 카피톨리움에 승리할 때마다 하나씩 걸어놓았다는 이야기이다.
6. 로마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사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새점관 또는 고위 성직자의 새점을 통해 미리 징조를 받고 전투에 임하고는 하였다.
7. 즉 독재관이라는 암살당하기 딱 좋은 직책에 연연하는 대신에,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곡물 관리관이 됨으로서 사람들의 목줄을 죄다 틀어쥔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평생 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사실상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권력을 쟁취해왔다.
8. 아우구스투스가 호민관 권한을 공유하였던 인물은 마르쿠스 아그립파, 가이우스 카이사르 (양자), 티베리우스 등이 있다.
9. 원로원의 수장(princeps senatus)은 원로원에서 제 1의 권위를 갖는 사람으로서 원로원의 대표격으로 간주된다.
10. 이는 즉 아우구스투스가 아그립파와 함께 1000명까지 늘어난 원로원의 숫자를 다시 600명으로 줄인 일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수에토니우스의 ‘De vitis Caesarum’ 의 아우구스투스 – 35장 참조.
11. 리비아의 아들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를 뜻한다. AD 14년, 즉 아우구스투스가 별세할 해엔 이미 아우구스투스의 양자가 되어 대권을 승계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12. 여기서 ‘내 동료’는 2차 삼두의 일원이었던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를 가르키는데, 아마도 ‘conlegae’라고 하면 ‘삼두로서의 동료’를 일컫는 듯 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었는지를 고려한다면 매우 기만적인 단어 선택이 아니라 할 수 없다.
13. 즉 최고 제사장에 아우구스투스를 당선시키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모인 이들이 아우구스투스의 집회장으로 가서 아우구스투스에게 표를 던졌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