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소름끼치는 일을 겪은 뒤로 나 혼자 엘베 탔는데, 내려가면서 닫힘버튼을 바로 안 누르는 사람을 보면 경계하게 되었어. 우리집 복도는 ‘ㅁ’자 형태로 되어 있고, 빨강색 엘베가 상가 건물이고, 파랑색 엘베가 우리집이야. 건물 입구에 잠금장치는 당연히 없어서 엘베에서 내려와서 노란색 루트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문이 닫힙니다’라는 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안 들렸어. 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나는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있었어. 그런데 같이 탄 아저씨가 자꾸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더라. 엘베 문도 안 닫히고 그래서 정말 수상하게 느껴졌어. 보통은 소리 크게 듣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때는 이어폰을 꽂고 있어도 웬만한 소리는 다 듣더라고.
그래서 집으로 향하던 중에 갑자기 멈춰서 복도에 가로막혔어. 그 때 떠올랐던 건 김성모 만화를 읽던 중2병 시절의 기억이었어. 화분을 집어서 돌아섰지. 만약 저 아저씨가 괴한이라면 차라리 밖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집에 들어가면 노출되니까 더 끔찍했어. 그래서 엘베 방향의 복도를 주시하면서 이야기하면서 가다가 제대로 마주친 거야. 아저씨가 내 위층 버튼을 누른 채로 있었고, 몰래 같은 층으로 내려와서 뒤를 쫓아오는 거였어. 그럴 때 최대한 차분하게 목소리를 낮추고 아저씨에게 “회장님이 시키셨나요?”라고 물었어. 당연히 구라였지. 근데 먹혔어… 오늘은 가라고 말하고, 그대로 아저씨를 지나쳐서 엘베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서 상가로 들어갔어.
근데 이게 끝이 아니야. 나중에 경비실에서 CCTV 영상을 확인해보니, 나는 직접 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봤는데,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더라. 아저씨가 우리집 지나쳐가는 장면은 나왔는데, 그 아저씨가 나를 따라가서 같은 층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걱정한 것처럼 그 아저씨가 우리집으로 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래도 무서웠던 일이라서 이후에는 언제든지 비슷한 상황이 오면 신경쓰고 있다. 너네도 위험할 땐 그냥 아무말이나 해. 그러면 그게 위험을 피하게 해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