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북쪽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는 고대부터 숙신계 민족이 살고 있었다. 숙신, 물길, 말갈 등의 부족국가 형태의 집단들이 흩어져 살았다. 숙신 민족은 부여계 예족과 사이가 나빴다. 힘이 약해 예족한테 자주 패해 살았고, 고구려 맥족도 함께 패해 살았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경에 동호족 선비족이 부여를 공격하고, 맥족은 이를 이용해 부여를 재공격했다. 이로부터 만주의 패권이 고구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4세기에 광개토대왕은 숙신계 말갈족을 이용했다. 이 때 말갈인들이 고구려 휘하에 모였고, 예족, 동호족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다. 말갈족 없이는 고구려의 군사력을 상상할 수 없었다. 고구려는 분열된 남북조의 틈을 타 성장했으나, 수나라, 당나라의 공세에 패해 지불할 돈이 없어져, 말갈족 상당수가 당나라에 도망갔다.
이것이 바로 남생/남건 형제의 싸움의 배경이다. 당나라에 도망간 말갈족은 신라를 공격했고, 나머지 세력들은 발해를 건국했다. 발해는 잘 나갔지만 거란족에게 멸망당했다. 여진족은 거란에게 패해 살다가 금나라를 세웠고, 거란과 송나라를 공격했다.
아골타는 고려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했으나, 한민족이 숙신민족을 천민으로 봤기 때문에 실패했다. 고려는 아골타의 제안을 무시했고 패배했다. 금나라는 잘 나갔으나 몽골에게 멸망당했다.
몽골의 동방삼왕가는 도적떼였고, 고려와 여진은 몽골의 약탈에 시달렸다. 이성계는 몽골을 배신하고 고려에 들어가서 조선을 세웠다. 이성계의 부하 중 여진족도 있었고, 이들과 2세대 조선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이방원의 아들인 세종 대에 와서 조선은 대대적으로 인종청소를 감행한다. 북방의 여진족들을 압록강, 두만강 너머로 밀어내버린 것이다. 사실 삼국시대~고려시대부터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어 왔다. 한국인들은 평화의 민족이며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숙신민족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침략행위를 거듭해 온 것. 먼터무는 이 난리통에 사망한다.
그리고 이후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웠고, 홍타이지는 조선을 공격했다. 한민족과 숙신민족의 관계는 매우 복잡했다. 삼국시대에는 한 국가 안에서 살기도 했고, 가까운 이웃으로 부대끼며 치고받고 했다. 순대와 선지국은 여진족의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