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년 고딩 시절, 서든어택 한창 하는데 그때는 XP 운영체제였고, 평균적인 메모리는 512MB, 잘해야 1GB였음. 그런데 우리 집 컴은 2GB였어.
아빠가 큰 맘 먹고 사온 HP 컴이었는데 내장 그래픽이었지만, 앤간한 게임은 여유롭게 돌아갔음.
그때는 우리 집 컴이 최고였고, 집 컴만한 게 없었음. 친구 집 가면, 램이 죄다 256, 512 이런 것이라 렉이 걸렸거든.
그로부터 6년 뒤, 군 전역하고 컴퓨터 맞춰서 내 방에서 새로 맞춘 i5 2500, 560ti 컴으로 배틀필드3 조지고 있는데, 아빠가 이 컴퓨터로 회사 가지고 갈 서류를 뽑는 거야.
근데 너무 후져서 프린트도 제대로 안 되더라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부 사이트 들어가고, 거기서 여러가지를 설치하고, 보안 모듈을 설치해서 프린터에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영겁의 시간이 걸리는 거야.
그거 보고 내가 좀 마음이 안좋았어. 아들놈은 옆 방에서 쌔컴으로 배틀필드 조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날 바로 용산 가서 i3 CPU, 메인보드, SSD 사들고 옴.
그리고 컴퓨터 옆판을 까서 고대로 부품만 싹 교체하고 윈도우7으로 새로 깔음.
보드가 바뀌어서 기존의 전원 스위치가 도저히 안 닿길래, 내 컴에서 리셋 스위치를 빼가지고 갖다 박음.
그리고 아무 일 없듯이 입을 싹 닫고 저녁에 아빠가 와서 컴퓨터를 킬 때까지 모른 척함.
울 아빠는 절대 칭찬 같은 거 직접적으로 안 해. 옛날 사람이라, 컴퓨터도 기껏 바꿔놨는데 왜 돈들여서 바꿨냐, 쓸데없게 막 이러는 거.
근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흘러나왔고, 7년이 지난 지금도 그게 기억남. 그게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효도 중 하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