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어쩌다 상하차를? 인서울 중하위권 4년제 영문과를 졸업한 올해 2월, 재수 때문에 25살이 되어버린 나는 학사 학위를 가진 백수가 되었다. 나는 졸업식엔 가지도 않았고 1월 초부터 집 근처 CJ 집화점에서 택배 알바를 시작했다. 왜 이 일을 하냐고 종종 질문을 받았다. 사실 난 아직도 잘 모른다. 난 알바 경험이 거의 없었다. 금수저여서가 아니었다. 우리 집은 대학 학비를 대줄 형편이 안 되는 집안이었다.
난 학교 다닐 적엔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고생하기보단 공부만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타자는 마인드였고, 결국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휴학 없이 열심히 달려왔다. 막상 졸업할 때쯤 난 길을 잃었다. 학부생 내내 영문학 공부를 재밌게 한 덕에 서울대나 서강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이었고, 잘 풀린다면 해외에서 박사를 하면서 그렇게 계속 학문 쪽으로 커리어를 쌓으려고 했었는데 4학년이 되어서 갑작스레 흥미를 잃은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된 나는 뒤늦게 군대 문제를 앞두고 학사 장교 지원과 일반 병 입대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알바 사이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당장 담뱃값도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취업을 하자니 군대가 걸렸고 대학원 진학에 대한 미련도 조금 남아있었으며, 아싸리 군대를 빨리 갔다오자니 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아무튼 알바천국을 뒤지던 나는 집 근처에 택배 물류 알바 집화점이 있음을 알게 되어 바로 지원했고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별 생각 없이 상하차를 하게 됐다.
1. 근무조건
내가 알기로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는 곳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집화점이고 다른 하나가 허브다 (hub, 폰허브 할 때 그 허브 맞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헬이라고 알고 있는 곳이 바로 그 허브다. 야간 근무에 기본적으로 9~12 시간씩 되는 괴랄한 근무조건 때문에 젊은이들이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다음날 삭신이 쑤셔 변기 앉는 데에도 신음을 내뱉게 만드는 바로 그곳이다. 앞서 내가 알바 경험이 없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이 허브에서는 방학 때 급전이 필요할 때 몇번 일해본 적이 있다. 안양 살 때는 군포에서, 서울로 이사오고 나서는 곤지암, 용산 등에서. 결론만 말하면 허브에서는 일을 오래 안하는 게 맞다. 젊은 나이에 골병든다.
반면 집화점은 케바케다. 집화점이란 건 쉽게 말해 만들어지고 포장이 된 물건을 날라서 정리해 상차하는 곳이다. 여기서 상차한 물건들이 킹갓 11톤 윙바디 트럭을 타고 허브로 가서 분류된 뒤 우리들의 집으로 배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집화점은 온갖 트럭이란 트럭이 다 모이는 허브랑 다르게 크기도 비교적 작고 하루에 다루는 총 물량도 적으며 기본적으로 주간 근무에 근무 시간도 짧은 편이다. 물론 택배 회사기 때문에 물건을 만들고 포장하는 일은 하지 않으며, 집화점에서 알바가 하는 일은 그 물건들을 날라 ‘상차’하는 것이다. 내가 근무한 곳은 기본적으로 주 5일 오후 2~7시 근무였는데, 그건 물량이 적은 여름때 얘기고 물량이 많은 겨울엔 12시간씩 하기도 했다. 임금은 물론 최저시급 + 주휴수당이다. 일은 힘든데 돈이 짜다는 것이 이 일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2. 육체적 피로도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2~7시 5시간 근무라고 해도 안 쓰던 근육을 계속 쓰면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내가 일을 시작했던 날은 1월 4일인데 그 날은 겨울이라 물량이 많아 연장근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7시간 정도 했었는데, 다음날 어김없이 삭신이 쑤셨다.
다행인 건 그렇게 엄청나게 무거운 물건들은 별로 없는 편이라 근육통이 심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로 다루는 물품이 크게 1. 여인닷컴의 화장품 2. 텐바이텐의 가정 및 사무용품 3. 이투스 (입시용 교재) 4. 두란노 (기독교 서적) 인데 화장품과 사무용품은 가볍고 크기가 작다.
문제는 이투스랑 두란노인데 책이라서 상당히 무거운 편이다.. 일주일 정도는 몸이 힘들지만 어찌되었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은 금세 적응됐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일을 별로 해보지 않은 초보자들이 갖는 미숙함이다. 바로 물건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루고 쌓는지에 대한 경험치 부족이다. 이것도 개인차가 있지만 결국엔 적응되는 문제이긴 한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 눈치를 계속 봐야 하고 심한 경우 트러블이 생기기 때문에 초보자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선 11톤 트럭 한 대에 최소 2명, 최대 4명이 붙어서 일했다. 트럭 입구까지 이어지는 레일이 2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물건을 나르는 구조였는데, 레일 속도에 맞춰 빠르게 물건을 쌓고 날라서 상차해야 했다. 나는 다행히 일이주 만에 적응했다.
3. 사람들
다른 상하차 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바로 앞서 언급한 미숙함과 관련해 같이 일하는 아저씨한테 쌍욕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허브에서 일할 때는 확실히 그렇다. 나도 곤지암에서 일일 알바 할 때 40대쯤 되보이는 아저씨한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흔히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 낮고 인성이 훌륭하지 않은, 쉽게 말해 변변찮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주로 허브에서 만날 수 있다. 집화점에 성인군자가 모인다는 뜻은 아니고, 아무래도 집화점보다는 허브에 인력이 훨씬 많아서 비교적 허브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내가 일한 곳에선 20대 초중반 젊은 친구들을 주로 알바로 뽑았다. 인력관리를 하는 반장 형이 27살이었기 때문인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추측해본다. 20대 초중반의 사회 초년생들이 모여서 일한 만큼 분위기는 가볍운 편이었다. 낯을 가리는 편인 나도 한달 쯤 지날 무렵엔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개중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는 대신 그냥저냥 알바 하면서 지내는 애들도 있었고, 건대 다니는 중에 방학이라 알바하러 온 친구, 지거국 다니면서 마찬가지로 방학이라 일하러 온 친구, 군대 갓 전역하고 잠깐 돈 벌러 온 친구, 군대 가기 전 돈 벌러 온 친구,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주경야독하는 친구 등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막장인생은 없었다. 학생들이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갈 시즌이 될 때쯤엔 30대 40대 형님들이 잠깐씩 일하러들 왔었다. 투잡 뛰는 분이 대부분이었고 직장을 잃고 구직 준비를 하는 동안 가족을 부양하러 오는 중년 아저씨도 있었다. 그런 분들은 얼마 안 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여러 사람들이 거쳐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결국 택배 상하차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4. 특별히 힘들었던 점이 일은 트럭 안에서 하긴 하지만 어찌됐든 야외 근무이기 때문에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겨울엔 그래도 차가 바람막이 역할을 해서 찬바람을 직접 쐬는 일은 없고 몸을 움직이면 열이 나서 괜찮은데, 여름철엔 답이 없다. 공포영화다. 알다시피 트럭은 철이다. 2시에 일하러 트럭에 올라가면 이미 덥혀질 대로 덥혀진 트럭 안은 찜질방이 되어 있다. 이제 거기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 10분 내로 온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모조리 땀이 나온다(한 시간 쯤 지나면 침도 나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름엔 물량이 적어서 연장근무 없이 7시면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자존감 문제몇 달 전 커뮤니티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택배 상하차 관련해서.. 알바를 한번 해보면 택배를 받을 때마다 자기가 물건을 어떻게 다뤘는지가 생각난다고. 물류 일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일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이 아니며 자기계발에 도움되는 일도, 원하는 좋은 직장에 커리어로 써 넣을 수 있는 종류의 일도 아니다. 업무는 고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거친 경우가 많으며 나는 이런 일을 하노라 하고 어깨 펴고 당당하게 얘기하기도 힘든 그런 일이다.
노동에는 귀천이 없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직업의 귀천이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은 몸 쓰는 일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짙은 사회였다.
그러나 나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또 깨달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나 사람들의 의식에는 귀천이 있으며, 정직하게 땀 흘려 번 돈에는 가식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결국 택배 상하차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마무리.지루하고 긴 글 읽어준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난 글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건 그냥 사람 살아가는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