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복 입은 고등어가 게임에서 지고 흘끔 보더니 건너와서 “다리만 거냐? 또 그래봐 뒤진다”고 협박하길래 또 이기면 맞을까봐 일부러 져줬어. 지금 생각해보면 안경을 쓰고 여드름이 심한 찐따였는데, 교복만 봐도 무서웠던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었던거같아.
99년 중2 때, 킹오파98를 하던 중 내가 실수로 고른 루갈 카이져 웨이브를 상대방이 계속해서 맞길래 난 “이걸 맞네”하고 중얼거렸어. 그런데 상대방이 내 방향을 바라보면서 앞니를 드러낸 늑대 같은 표정으로 “뒈… 지고… 싶냐…”고 나를 위협했어. 나는 선배인 줄 알고 죄송하다고 대충 얼버무렸어. 그리고 몇 일 뒤, 교무실 청소하다가 그놈을 발견했어. 그놈 명찰 색을 보니까 선배가 아니라 1학년 신입생이었던 거야…! 나는 그놈한테 쫄았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서 그놈 반으로 친구들을 데려가서 청소 도구실로 끌고 갔어. 거기서 엉엉 울 때까지 때려줬어. 나는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전형적인 소인배였나 봐.
그러고 보면 오락실 고수들은 대개 게임 스테이지를 벗어난 외적인 위협에 굴하지 않고 뺨을 맞고 울면서도 꿋꿋하게 게임을 했던 것 같아. 그래도 맞아서 죽을 것 같아도 게임 한 판을 안 봐주던 친구, 졸업 뒤에도 리니지, 스타, 디아블로2 어떤 게임이든 우리 지역에서는 “템좋다, 고수다”하면 그 친구 이름이 나왔고 종종 그 소식을 들었어. 내게 킹오파를 알려준 그 친구는 고딩들이 욕하는 소리에도 “히히 어쩔건데” 웃으며 게임을 즐기더라고. 얘네들 요즘도 격겜 하고 있을까?
참 재미있던 시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