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사태가 발생한 당시, 존 마이클리스 대령은 북한군의 남침을 막기 위해 미군 중 최초로 한반도에 진입한 1개 연대를 지휘했다. 이 대령은 10월 초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몇 달 전 병력들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실제로 전장으로 나아갔지만, 제대로 한 발의 총도 쏠 수 없었다. 그들은 최신식이 아닌 일반적인 카빈 총의 사용 방법조차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병사들은 단순히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에 대한 지루한 강의만 들었을 뿐, 총탄이 휘몰아치는 환경에서의 생존 훈련은 받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과 관련된 주식을 사야 하고, 적십자에 기부하며, 성병을 예방하고, 부모님께 꾸준히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주로 잘 정비된 도로를 차량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도보 행군을 수행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만약 주변을 정찰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 그들은 커다란 트럭을 몰고 고향의 고속도로처럼 즐겁게 달렸다.” – 이는 데이비드 헬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님에게 꾸준히 안부 편지를 써 보내는 착한 병사들이었다.